
한동안 빠르게 큰 스타트업을 만드는 공식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구독으로 팝니다. 코드는 복사 비용이 0에 가까우니 마진은 75% 위로 유지합니다. 그리고 키웁니다.
지속되는 관계를 쥔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애플이 유료 구독 15억을 넘긴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앱의 시대’ 공식이었습니다. 콘크리트를 붓거나 반도체를 만질 일 없이도 유니콘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공식이 조용히 깨지고 있습니다. 벤처 자금이 지금 어디로 흐르는지를 보면 신호가 분명합니다.
숫자부터 보면, 돈이 향하는 곳이 달라졌습니다
먼저 규모를 봅니다. 크런치베이스 집계로 2025년 전 세계 벤처·그로스 투자액은 약 4,250억 달러였습니다. 1년 전보다 30%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절반가량인 약 2,120억 달러가 AI로 갔습니다.
여기서 ‘AI’는 똑똑한 챗봇 앱이 아닙니다. OpenAI, 스케일AI, 앤트로픽,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xAI 이 다섯 곳이 각각 50억 달러 넘게 투자받았고, 합치면 800억 달러가 넘습니다. 한 해 전체 벤처 자금의 약 5분의 1이 다섯 회사로 몰린 셈입니다.
2026년 초에는 더 극단으로 갔습니다. 파운데이션 AI 스타트업들이 한 분기 만에 1,780억 달러를 끌어모았습니다. 2025년 한 해 전체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이 회사들은 ‘가벼운’ 회사가 아닙니다. OpenAI 기업가치는 2025년 말 5,000억 달러를 넘었고 2026년 초 보도상 8,000억 달러를 웃돌았습니다. 스페이스X는 8,000억 달러 안팎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상장 기업이 됐습니다. 앤트로픽은 몇 달 만에 약 1,830억 달러에서 보도상 9,650억 달러까지 뛰었습니다.
지금 비상장 시장에서 가장 큰 가치는 발전소, 반도체 공장, 로켓, 데이터센터가 있어야 존재하는 것들에 쌓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흐름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 ‘문명 기술’
로건 시먼스라는 필자가 Entrepreneur 기고에서 이 새 범주를 ‘문명 기술(civilization technology)’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의 문명 수준을 유지하고 늘어나는 인구와 수요에 맞춰 확장할 수 있도록 떠받치는 사업”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가 꼽은 목록이 이 흐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에너지·원자력(소형모듈원전·핵융합·전력망), AI 연산과 반도체, 첨단 제조와 리쇼어링, 국방, 우주, 로보틱스, 공급망, 바이오 보안입니다. 그는 “이제 돈과 기회는 어려운 것들에 있다 — 발전소, 로켓, 자율 선박, 원자로, 게놈”이라고 썼습니다.
용어 자체는 새롭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한 사람이 갑자기 떠올린 생각은 아닙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캐서린 보일은 몇 년째 ‘아메리칸 다이너미즘(American Dynamism)’이라는 투자 실무를 거의 같은 지도 위에 세워 왔습니다. 국방, 제조, 에너지, 항공우주, 핵심 인프라입니다. 그가 거듭 강조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재가 빅테크에서 빠져나와 하드테크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방이 이 말을 숫자로 증명합니다. 안두릴은 2025년 6월 305억 달러 밸류로 투자받았고, 2026년 5월 610억 달러로 두 배가 됐습니다. 7월 말에는 보도상 1,000억 달러 안팎으로 새 투자를 논의 중이었습니다. 국방 하드웨어 회사가 1년 남짓 만에 세 배가 되는 것은 앱의 시대에는 없던 일입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세 가지 힘이 겹쳤습니다.
첫째, 돈이 물리적인 것을 지어야 합니다. 프런티어 모델을 학습하고 돌리는 일은 코드 문제가 아니라 설비 투자 문제입니다. 2026년 한 분기에 4대 클라우드 사업자가 쓴 돈만 약 1,310억 달러입니다. 이 돈은 결국 콘크리트, 변압기, 실리콘의 형태로 세상에 자리 잡습니다. 비트가 아니라 원자입니다.
둘째, 지정학이 ‘산업 기반’을 다시 투자 대상으로 되돌렸습니다. 리쇼어링, 국방, 에너지 자립, 안전한 공급망이 정책 구호에서 벤처 카테고리로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 흐름의 한 장면을 미국 정부가 양자컴퓨터 회사 9곳의 지분을 사들인 일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프런티어 투자자처럼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셋째, 셋 중 가장 눈에 잘 띄지 않는 지점인데, 소프트웨어가 복사하기 더 쉬워지면서 해자가 얕아졌습니다. 윙 벤처캐피털의 크리스 제올리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었다, 이제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먹는다’는 글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전통 SaaS의 매출 배수는 2021년 정점 18.6배에서 약 6.7배로 눌렸습니다. AI 네이티브 앱의 매출총이익률은 SaaS의 75~90%가 아니라 50~60%입니다. 질의 하나마다 모델을 다시 돌리기 때문이고, 이 비용은 코드 복사처럼 규모가 커진다고 줄지 않습니다.
허깅페이스에 모델 220만 개가 올라와 있고 오픈·클로즈드 모델 격차가 좁혀지는 지금, 방어 가능한 것은 화면 위의 앱이 아닙니다. 전력망, 로봇, 독점 데이터, 반도체 공장입니다. 가치가 스택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레임, 과장하면 곤란합니다
솔직히 짚을 게 있습니다. “벤처의 절반이 AI로 갔다”는 말이 “문명 기술이 이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은 경제성이 아직 증명되지 않은 소수 파운데이션 모델 랩에 몰려 있습니다. 대형 AI 회사에서 추론 비용이 이미 매출의 약 23%를 차지하는데, 이 비율이 어디서 안정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딥테크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본이 많이 들고, 느리고, 수십억을 태우고도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 핵융합·우주 회사가 널려 있습니다. 지금의 밸류에이션 일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베팅입니다. 그리고 SaaS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값이 매겨졌을 뿐입니다.
‘문명 기술’은 유용한 렌즈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쉽습니다. ‘문명 기술’은 한 필자의 조어이고, 마침 a16z·파운더스펀드·윙이 각자의 각도에서 짚어 온 것과 맞닿았을 뿐입니다.
진짜 흥미로운 건, 서로 독립적인 세 집단이 같은 결론에 닿았다는 점입니다. 국방 중심 투자자, 하드웨어 스택 VC, 비즈니스 칼럼니스트가 모두 전력·연산·물리 인프라를 가리킬 때, 그 용어가 살아남든 아니든 그 프레임은 실재하는 무언가를 짚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는 이 블로그가 바닥에서부터 지켜본 것과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제가 피지컬 AI를 계속 붙드는 이유 — 로봇이 공장 현장으로 내려가는 신호, 마이크로와트로 굴러가는 로봇 제어 칩 — 은 가치가 비트에서 원자로 옮겨 가기 때문입니다.
연산 토대 이야기도 같습니다. 빛으로 AI의 전력 문제를 풀려는 펜실베이니아대 연구, OpenAI가 GPT-5.6 가격을 80% 내린 일이 사실은 추론 경제성 이야기였다는 것, 4분의 1 크기 모델가 조금 더 똑똑한 모델보다 중요하다는 것. 무작위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VC들이 지금 가치를 부여하는 큰 그림의 앞선 단서들이었습니다.
한 줄로 남긴다면 이렇습니다. 소프트웨어 복사 비용이 사실상 사라지자, 가치는 공짜로 복사할 수 없는 것들로 흘러갔습니다. 에너지, 실리콘, 로봇, 디지털 세계 아래의 물리적 토대입니다.
‘문명 기술’이 끝까지 살아남을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방향 — 원자 쪽, 토대 쪽 — 은 계속 지켜볼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분명히 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숫자 상당수는 결과가 아니라 베팅입니다.
※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원문 출처 / Source: https://www.entrepreneur.com/business-news/tech/civilization-technology
이미지: İsmail Enes Ayhan / Unsplash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