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이 균형을 잡거나 목표물을 따라갈 때, 그 “생각”은 과연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연산의 물리적 기반을 다시 짜는 또 다른 사례로, 빛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축에서 제어한 세계 최초 광자 시간 결정도 참고할 만합니다.
평소에는 잘 떠올리지 않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파고든 연구가 최근 꽤 흥미로운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번 연구는 “계산을 덜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인 로봇 제어 칩”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작은 로봇이 제어를 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센서가 뭔가를 읽습니다. 그 값을 숫자로 바꿉니다(아날로그-디지털 변환). 디지털 칩이 제어 알고리즘을 돌립니다. 보통 PID 제어라는, 100년 가까이 기계를 움직여온 그 알고리즘입니다. 그 결과를 모터에 신호로 보냅니다.
이 과정을 1초에 수천 번씩 반복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단계 하나하나가 전부 전력과 시간과 칩 면적을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콘센트에 꽂아 쓰는 창고 로봇이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손바닥만 한 드론이나 초소형 의료 로봇이라면? 이 “낭비”가 사실상 승부처입니다.
미시간대 팀이 들고나온 답은 “리저버 컴퓨팅(reservoir computing)” 이라는 방식입니다.
이름이 좀 무섭게 들립니다. 그런데 개념은 쉽습니다.
잔잔한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퍼져나가는 물결은 “돌 하나”라는 단순한 입력에 대한 엄청나게 복잡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물결이 잦아드는 동안 연못이 잠깐 그 충격을 “기억” 한다는 점입니다.
리저버 컴퓨팅이 바로 이 원리를 활용합니다. 센서 신호를 복잡하게 얽힌 물리 시스템에 던져 넣으면, 그 시스템이 알아서 신호를 뒤섞고 메아리치게 만듭니다. 어려운 비선형 계산을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수행합니다.
학습시킬 부분은 맨 끝의 얇은 “읽기(readout)” 층 하나뿐입니다. 물결 속에서 유용한 답만 골라내면 됩니다.
미시간대 팀은 이 “연못”을 하드웨어로 만들었습니다.
멤리스터라는 소자를 썼는데, 최근에 흘린 전류에 따라 저항값이 바뀌는, 그러니까 자체 단기 기억력을 가진 부품입니다. 이걸 비스무트 셀레나이드라는 층상 반도체 물질로 그물망처럼 엮었습니다.
만드는 방법도 재미있습니다. 기판을 문질러서 정전기 패턴을 만든 다음, 반도체 분자가 전기를 띤 곳에만 자리잡게 했다고 합니다. 이름까지 외울 필요는 없고, 핵심은 이렇게 만든 회로망이 물리적인 “연못”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능은 어떨까요? 실제 과제 두 개로 보여줬습니다.
- 움직이는 목표물을 따라가는 로버
- 레버 균형을 잡는 드론형 모터
둘 다 기존 디지털 제어기와 똑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전력이 약 12.5 마이크로와트. 같은 일을 하는 일반 디지털 PID 제어기가 약 5 밀리와트이니까, 대략 400배 차이입니다.
진짜 핵심은 이것입니다. 여기서 절약되는 것은 단순히 “더 효율적인 프로세서”가 아닙니다. 연산이 ‘디지털 계산’의 형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질의 물리 현상이 일을 대신합니다. 무거운 소프트웨어도, 센서와 CPU 사이를 끝없이 오가는 숫자도 거의 없습니다. 제어 루프가 계산이라기보다 반사 신경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제부터가 핵심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피지컬 AI(Physical AI)” 라는 주제를 꾸준히 다뤄왔습니다. 데이터센터 안에 사는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고 균형 잡고 행동해야 하는 AI 말입니다.
피지컬 AI 투자 흐름, 테슬라 옵티머스, LeRobot 같은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다룰 때 이야기는 대부분 “몸과 두뇌” 에 쏠려 있었습니다. 더 좋은 액추에이터, 더 좋은 정책 모델, 더 많은 학습 데이터.
그런데 훨씬 덜 이야기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 제어가 실제로 돌아가는 ‘바탕(substrate)’, 즉 하드웨어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점점 이게 병목이 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곤충 크기 드론 떼는 “AI 모델이 안 똑똑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함에는 전력이 들고, 전력은 배터리를 잡아먹고, 배터리는 무게를 늘리고, 무게는 그 민첩함을 죽입니다. 디지털 제어 루프에 1 밀리와트를 쓸수록, 비행 시간이나 적재 여유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입니다.
리저버 컴퓨팅은 바로 이 막다른 골목을 우회합니다. 하드웨어 자체를 컴퓨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앞서 다룬 연구들과도 결이 같습니다. USC의 고효율 인공 뉴런과 외부 전원 없이 작동하는 조지아테크의 말랑한 로봇 ‘눈’입니다. 관통하는 줄거리는 똑같았습니다. 계산을 로봇에 붙인 별도의 디지털 상자로 보지 말고, 지능을 물질과 물리 법칙 안에 직접 녹여 넣자는 발상입니다.
제 생각엔, 우리는 지금 로보틱스에 세 번째 층이 천천히 태어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 있던 자리에, 둘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는 ‘물리 층(physics layer)’ 이 끼어드는 것입니다.
물론, 솔직한 한계도 짚어야 합니다.
이건 제품이 아니라 실험실 시연입니다. 과제 두 개는 개념 증명이지 플랫폼이 아닙니다. 아날로그 시스템은 온도에 따라 값이 흔들리고, 똑같이 대량 생산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정전기 패턴으로 만드는 회로망을 다음 분기에 수백만 개씩 찍어낼 수는 없습니다.
리저버 컴퓨팅 자체에도 천장이 있습니다. 반사 수준의 저수준 제어엔 탁월하지만, 창고를 가로지르는 경로를 짜거나 과제를 추론하진 못합니다. 그건 여전히 디지털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미래는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대체한다”가 아닙니다. 역할 분담입니다. 인지·계획·언어 같은 무거운 작업은 전력 잡아먹는 디지털 칩이 맡고, 균형·안정화·모터 미세조정 같은 빠르고 단순하고 늘 켜져 있어야 하는 반사 작업은 마이크로와트 아날로그 하드웨어로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몸이 이렇게 작동합니다. 똑바로 서 있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빠르고 싼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합니다. 로봇은 그동안 그 일을 비싼 방식으로 해왔던 것뿐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입니다.
로보틱스의 다음 도약은 어쩌면 더 똑똑한 모델에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계산을 좀 그만하고, 물리에게 일을 넘기는 칩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덜 계산하는 게 더 똑똑하다’는 말, 처음엔 이상하게 들리지만 — 곱씹어 보면 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원문 출처 / Source: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u2663 (Science Advances, March 2025)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1939057/
Photo: Umberto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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